AI 협업에서 빨라진 것은 개발만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는 개발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느렸다.
하나의 기능을 만들고, 수정하고,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은 단순히 느린 시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직접 구현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코드를 짜면서 구조를 다시 보고, 화면을 만들면서 흐름을 다시 보고, 버그를 고치면서 원인을 다시 생각했다.
개발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판단도 그 안에 자연스럽게 분산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AI와 협업하면서 이 구조가 많이 달라졌다.
수정은 빠르게 끝난다.
기능도 빠르게 만들어진다.
아이디어를 말하면 결과가 바로 나온다.
처음에는 이것이 단순히 개발 속도가 빨라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맞다.
그런데 계속 써보니, 개발 속도만 빨라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것들이 짧은 시간 안에 몰리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구현하는 과정에서 나눠서 하던 판단들이 있었다.
이 구조가 맞는지, 이 화면 흐름이 괜찮은지, 이 방식이 유지보수에 문제가 없을지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AI가 빠르게 결과를 내기 시작하면, 나는 더 상위의 판단을 해야 한다.
이 방향이 맞는지.
지금 이 기능을 넣는 게 맞는지.
AI가 만든 구조를 계속 가져가도 되는지.
이 결과물을 배포해도 되는지.
검증을 충분히 한 것인지.
내가 지금 대충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 횟수도 늘어난 것 같지만, 판단해야 하는 덩어리나 깊이도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개발자 관점의 판단을 많이 했다면, AI 협업에서는 기획자, 개발자, QA, 아키텍트, PM, 대표의 판단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피로의 원인이 단순히 작업량 때문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량보다 판단 밀도가 높아진 것이다.
특히 흐름을 탈 때 이 현상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바로 AI에게 요청한다.
결과가 나온다.
다시 수정할 것이 보인다.
또 요청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단계가 줄어들고, 시간이 압축된다.
흐름을 타고 있다는 느낌은 좋다.
하지만 그 안에서 검증이나 정리도 같이 줄어들 수 있다.
방금 무엇을 바꿨는지 흐려진다.
충분히 확인하기 전에 다음 수정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검증보다 다음 요청이 먼저 나온다.
여러 프로젝트가 동시에 생각난다.
이쯤 되면 빠르게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급박하게 진행하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급박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천천히 관찰하고, 감각을 확인하고, 시도하고, 반응을 보고, 다시 수정하는 방식이 더 잘 맞는다.
그런데 AI 협업은 결과가 너무 빨리 나오기 때문에, 내가 원래 좋아하던 실험 리듬이 어느 순간 급박한 처리 리듬으로 바뀔 때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AI 협업에서 중요한 것은 더 빨리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빠른 결과 속에서도 내 판단 리듬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압축해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면, 그때는 잠깐 멈춰야 할 것 같다.
완전히 쉬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새 요청을 멈추고, 지금 무엇을 바꿨는지 본다.
검증하지 않은 부분을 확인한다.
이어서 할 일과 나중에 볼 일을 분리한다.
그리고 다시 내가 주도할 수 있는 속도로 돌아온다.
예전에는 개발 속도가 느려서 이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이제는 그 완충 구간을 의식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같다.
AI가 빠르게 만들어주는 시대에는, 사람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무엇을 만들지.
어디까지 믿을지.
무엇을 검증할지.
언제 멈출지.
어떤 기준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지.
이런 판단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결국 AI 협업에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이 시키는 능력만은 아닐 것이다.
빠른 흐름 속에서도 판단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 능력.
요즘 내가 배우고 있는 것은 아마 그 부분인 것 같다.